'매출 6조' 네이버 이끄는 40대 CEO 재입사 이유와 포부
"검색으로 시작해 커머스, 콘텐츠, 핀테크, 클라우드에 이르기까지정보기술(IT) 기업이 꿈꾸는 혁신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20년이 넘은 기업인데 작년 매출 성장률이 28.5%를 기록한 것도 대단하다.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닌 회사에 인생을 걸어보고 싶었다." 네이버의 40대 최연소 사령탑이 된 최수연 대표는 지난달 사내 간담회에서 로펌 변호사를 관두고 재입사를선택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최 대표는 2005년 네이버 신입사원 이던 시절 국내 검색 서비스에 집중했던 벤처기업이 10여 년 후 다양한 신사업으로 무장해 해외로 뻗어나가는 테크기업으로 변신해 놀랐다고 했다. 그는 네이버를 '검색 회사'가 아니라 조직·기업들이 모인 '그룹'이라고 표현했다.
네이버는 작년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매출 6조원을 넘기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기존 주력 사업인 검색보다 커머스, 콘텐츠, 핀테크, 클라우드와 같은 4대 신사업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신사업 비중은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섰다.
최 대표의 미션은 네이버를 '글로벌 테크기업'으로 키워 제2의 도약을 이루는 것이다. 네이버가 지금까지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면, 이제는 '확장'에 방점이 찍혔다. 그는 올해를 네이버가 일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원년으로 삼을 계획이다. 작년 3월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각 사 자회사인 야후재팬과 라인의 경영을 합쳐 출범한 Z홀딩스의 진가가 발휘될 거라는 자신감이다.
최 대표는 "일본 사업 전략을 묻는 투자자들에게 한국으로 치면 네이버, SK텔레콤, 카카오가 한 팀이 되는 건데 사업 기회가 무궁무진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일본 대형 통신사인 소프트뱅크와 일본 최대 포털 야후재팬, 일본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라인과 한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작년 말 일본에 출시한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네이버의 검색, 인공지능(AI), 광고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소프트뱅크와 B2B(기업 간 부문) 협력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선 네이버웹툰에 거는 기대가 크다. 네이버웹툰은 북미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와 지식재산(IP)을 이용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최 대표는 "네이버웹툰이 제2의 디즈니·넷플릭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다. 네이버는 미국에서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와 팬 플랫폼 서비스도 출시한다. 유럽에서는 중고 재판매(리셀) 등 커머스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새로운 네이버'가 내세운 키워드는 '도전'이다. 사내벤처에서 출발한 네이버가 한국 빅테크로 성장한 원동력은 도전의 유전자(DNA)인데, 해외 시장에서도 이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최 대표는 직원들에게 "네이버의 모든 서비스는 해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모든 업무를 해외 사업의 일환으로 여겨달라고 주문했다.
최 대표는 투자·법무·마케팅·인사 등 전문가로 구성한 최고경영자(CEO) 센터 조직을 만들어 네이버 사업들의 해외 공략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최 대표는 "2005년 제가 사원이던 시절에도 네이버의 모든 보고서에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문구가 있었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목표를 향해 달려온 결과 미국 빅테크와 차별되는 서비스와 기술 플랫폼을 만들어내며 해외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환영받는 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메시지에서는 "네이버의 전성기는 이제부터"라며 "네이버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이용자와 창작자, 소상공인(SME)의 성장을 만들어내는 글로벌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기준 라인을 포함한 네이버의 해외 매출 비중은 35% 수준이다.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네이버가 작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직원 사망 사건을 수습하면서 1981년생 CEO를 발탁했지만, 독립적인 의사 결정과 경영 수완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최 대표의 글로벌 감각, 투자 분야의 전문성 면에선 기대가 크다. 반면 트렌드와 기술 변화가 빠른 플랫폼 산업에서 창업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본 경험이 전무해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한성숙 유럽사업대표와 같은 기존 경영진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는 본인 역할에 대해 "글로벌 시장의 기회와 네이버 사업을 잘 연결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이나 가상화폐처럼 네이버 사내독립기업(CIC)에서 다루지 않는 신사업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규제나 사회 갈등 등 변수가 많은 신사업에 대해 신중론을 보여왔던 네이버가 뛰어들지는 최 대표 체제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기업가치 회복도 숙제다. 네이버 주가는 비대면 수요에 힘입어 가파른 상승세를 탔지만 작년 9월 이후 하락하고 있다. 최근 주가는 지난해 9월 고점(45만4000원) 대비 26% 빠졌다.
MZ세대 CEO 첫 과제는…MZ세대 직원 마음잡기
'MZ세대'. 최수연 대표가 자신에게 붙는 수식어 중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은 단어다. 1981년생인 최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에 해당한다. MZ세대 최고경영자(CEO)의 등장을 가장 반긴 것은 20·30대 직원들이다.
최 대표의 첫 시험대는 MZ세대 직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처우 개선 문제가 될 전망이다. 네이버 직원들은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카카오에 밀리자 연봉 인상을 비롯한 적극적인 보상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연봉 논란이 불거지자 경영진이 사내 게시판에 '총 보상' 규모가 카카오보다 작지 않다며 해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네이버 노사는 지난 2일 연봉 재원을 지난해보다 10% 증액하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국내 IT·게임업계에서 임금 인상 릴레이와 개발자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최고의 보상과 인재를 자랑하던 네이버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카카오는 올해 연봉 재원을 15% 늘리기로 했다.
글로벌 기업 목표에 걸맞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것도 과제다. 네이버는 회사가 커지면서 개인주의와 관료화된 문화, 소통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이 숨진 사건은 그간 켜켜이 쌓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대표는 기업 문화를 확 바꾸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인사 제도는 직원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설계하고 사업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리더는 업무 성과뿐 아니라 직원들과의 '협업 능력'을 따지기로 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재발을 방지하고 직원의 '심리적 안정'을 높이기 위해 조직 진단도 정례화할 계획이다. CEO가 이를 모니터링하고 개선책을 직접 발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는 "적절한 권한위임, 자신의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과감한 인재 채용 등의 조직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달 말까지 연봉 계약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 새로운 근무 방식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 대표는 앞으로 직원들이 귀찮게 느낄만큼 자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수평 문화를 강조하며 "'수연님'으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사내 메시지에 웃음 이모티콘과 '떨리네요'와 같은 구어체를 쓰며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도 역대 대표들과는 다른 행보다.
최 대표는 네이버 관련 기사와 댓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도 본다고 한다. 주변에 "악플이 신경 쓰이고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CEO가 젊기 때문에 네이버가 과감하고 새롭게 움직일 것이라는 회사 안팎의 기대감이 큰 것 같다"며 "네이버 기업문화에 확실한 변화를 주겠다"고 했다.
▶▶ 최수연 대표는…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2005년 네이버(당시 NHN)에 입사해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조직에서 근무했다. 이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법무법인 율촌에서 일하다 2019년 네이버에 글로벌 사업지원부 책임리더로 재입사했다. 글로벌 사업지원을 총괄하다 작년 11월 네이버 차기 대표로 내정됐으며 지난 3월 취임했다.